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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항해가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가끔은 항해가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qkrwnstj0401 준서
2026.05.14
배를 타던 시간은 끔찍하게 힘들었다. 그것은 가혹했던 환경탓은 아니다. 그 시절을 기록해놓은 빼곡히 채워져 글자를 꾸겨넣기 바쁜 나의 군생활 캘린더가 적나라하게 말해주듯,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던 몰아치는 일정때문이였다. 나는 쉬지않고 임무를 받아내는 고철덩이 안에서 중간관리자 정도의 나름의 역할이 있었고 내 역할 안에서 어떻게 최선을 다해낼까 고군분투했다. 다만 거의 대부분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본전도 안되는 일들 투성이고 500일의 가까운 기간동안 연례행사면 차라리 다행일 정도로 대체로 매번 처음 하게되는 일들밖에 없었다. 발전이나 숙련도는 커녕 이번에도 어떻게 턱걸이는 맞출까 염려하며 잠못드는 밤의 연속이였다.

그곳에서 깨달은게 있다면,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지언정 그것이 적성에 퍽 맞다는 점. 평생 군인이 천직일 줄 모르고 살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곳 만큼 몰입하고 성장할 수 있는곳이 있나 싶을 정도이다. 물론 함정의 운용과 관리에 흥미가 있기도 했지만,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오랜 고민에 빠졌을 때, 역할이 주어져야 그에 맞춰서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답을 얻게 해주었고, 전역 후 역할 없는 내 삶은, 일 없는 내 삶은 사람으로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 수 있게 되었다.

또 내가 역할 하나를 담당하고 있었던 그 조직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거대한 명분의 톱니 안에서 굴러가고 있었다. 우리가 어딘가 취직을 해서 직함을 달게 되면 되게 그러하듯, 회사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명분 또는 사측이 내세우는 어떤 대의적 명분, 또는 공직은 국가와 국민의 안전과 안정을 위해 일한다는 명분 등 고꾸라졌을때 그 문장을 읊는 것 만으로도 대부분을 일으켜세울 수 있는 명분이 이미 존재하며 대체로 잘 작동중이다. 그리고 세상으로 나와, 또 한번 짧지만 갈아넣었던 회사에서 퇴사한 이후, 나는 여전히 내가 선장이 된 배가 앞으로 가게 만들기 위해 머리를 싸메고 있다.

어떤 조직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일을 열심히 하는 편이였다. 그리고 납득이 안되는 상황을 맞이해도 굳이굳이 그 조직의 리더의 마음에서 이해하려 애썼다. 그것은 이미 내가 어떤 조직에 리더일 때 누군가는 쉽게 욕하는 어떤 중소기업 만큼도 내가 쉽게 해낼 수 없음을, 지금 비난받고 지탄받는 그들보다 특별히 나은 부분이 없음을 은연중에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난 아직도 그들에 비하면 세발의 피다.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 있다면 태도에 있어서 애매하게 중간의 포지션을 취해왔던 부분이다. 인간관계에서는 좋게좋게가 모토였다면 인력관리는 처음 해보는, 예상과는 다르게 완전 다른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분야였다. 뼈아픈 시간들을 보내고 자연스레 독해졌다. 물론 그것을 능숙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나의 빌어먹을 인간관계보다는 훨씬 양호했고 기존에 좋은게 좋은것이었던 나의 인원관리 방법보다 내가 이것을 잘한다는 것을, 꿈꿔왔던 수평적이고 화목한 조직보다. 수직적 위계에 최적화된 사람이란것을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다만 잘한다 그 뿐이지, 더군다나 내가 명분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 그런지 스스로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늘 의문이 남았는데, 전역을 하고 어쩌다 현장직도 한번 거치고 하니 힌트를 얻었고 지금은 답을 찾은 듯 하다. “우리는 뭐 할 줄 몰라서 가만히 있는 줄 아나”라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 내가 리더로서 독해져야 하는 이유는 그래도 열심히하는 사람들, 그래도 나를 따라와주고 조직의 가치를 지키고 헌신하며 성과를 내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강하고 표독해야하며 냉철해야한다. 그들을 공격하는 이기심과 나태함은 강력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것들은 존재 자체로 명분이된다. 증명해야하는 우리와는 다르다. 내가 지켜야하는 이들은 풍파에도 여전히 맡은 역할에서 최선을 다할것이고 늘 그렇듯이 그자리에 있을 것이기에 리더의 역할은 그들을 향하는 풍파를 막고 상처를 줄이는 일이다. 그들은 상처의 깊이와 상관없이 묵묵히 노를 젓겠지만 그들에게 나아가자 외치는 파수꾼이 있다면 그들의 방패가 되어줌도 어찌보면 당연하지 않겠나.

늘 목적지가 있고 앞으로 가고 있는 배에 올라탔다면 이젠 내가 배를 만들어서 목적지를 정하고 앞으로 가게 만들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아니, 사실 그런지는 오래 되었다. 여전히 내 배는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목적지도 갈수록 흐릿해진다. 출발하지 못한 배의 선장은 난파선조차도 첫 항해는 나선것이니 부러움의 대상이다. 내 역할이 무엇인지도 스스로 정의해야하고 나 말고는 나에게 일을 줄 사람또한 없다. 명분과 역할, 임무 이 세가지가 전부인 기계같은, 남들이 보기에는 저게 사람 사는거야 할 수도 있지만 나에겐 그것이 살아가게 만드는 이유인 내 삶이기에, 가끔은 그 삼박자가 합을 맞춰서 몰아치던 그 시절이 그리운 것 같다. 스트레스 받지 않는 순간은 나에게 숨쉬지 않는 순간과 같다. 생각하지 않는 순간은 잠든 순간밖에 없다. 그 외의 문법과 문체로 살아본 적도 없을 뿐더러,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게 내가 나답게 사는 법이다. 불행해보여도, 난 그렇게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