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이제 블로그 기능을 사용하실 수 있어요! 스튜디오에서 블로그를 호스팅해보세요. 📝
지금 생각할 수 있는것들을 무조건 넘어서야해

지금 생각할 수 있는것들을 무조건 넘어서야해

qkrwnstj0401 준서
2026.05.01
세상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물론 모두가 체감하는 정도의 변화는 아닐지도 모른다.
살아보니, 또 의도하지 않게 전혀 시야에 없던 세상도 경험하다 보니,
변화의 바람이 마치 태풍과 같아도 피해가는 곳들은 있기 마련이더라.
세상은 끝없이 연결되고 인간의 삶에서 가장 취약했던 시간이란 단위는 단순 의료의 발전 뿐만 아니라 시공간의 격차를 줄이면서 정복되고 있다. 약 한 세기 전에 태어났더라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기회와 시간을 우리는 누리고 있다.
또 반면에, 모두가 긴 시간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할지 결정할 기회와 능력의 분배는 불균등하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것들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것들이 거의 없다.
어디서 태어날 것인지. 누구에게서 태어날 것인지가 요즘 세상의 거의 모든것을 결정한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쌓인 레거시가 있고 우리는 그 세상 위에 덧붙여지는 것이기에 당연히 쌓임이 많은 곳에서 시작함이 유리하고 그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큰 시작의 격차를 만든다.
우리는 이것을 대체로 '불공평'으로 부르곤 한다. 출발선이 다른 것을 두고 공평함에 대한 지적을 한다.
경쟁의식에 대한 것이면 모르겠지만, 승리감이나 패배감에서 멀어져 이 불평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많은 사람들의 생존을 겨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난 모두가 똑같은 부를 나눠 가져야한다고 주장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파고들어가면 조금 결함이 있다. 굳이 내가 파고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것이 결함이 있음 이미 시대의 문명들과 이전 세대들이 피로서 원치않는 증명을 마쳤다.
우리는 자유경제와 공산주의를 넘어선 뭔가를 좇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있어졌다. 시대가 그러해졌다.
앞서 언급했듯이 실시간으로 전세계는 연결되고 교통의 발전은 물리적 간격까지 줄였으며 한동안 정체를 맞았던 모던 타임라인은 AI로 자신이 맞았던 모던이 한계가 아니였음을 깨달았다. 분명 우리는 새로운 세상의 초입에 서있다.
일론머스크의 말대로 초 생산의 시대가 열릴수도 있다. 샘 올트먼이 하려는 기본소득이 될 수도, 이재명 대통령이 초기 정치 커리어부터 실험해왔던 기본 소득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은 배급인 것이, 그때는 배급이 아닐수도 있다. 또 여전히 그러할 수도 있다. 우리가 우려하듯 가진 권력이 자비를 배풀 듯 나눔하는 대신 그들에게 인프라를 의존하는 순간 그들의 통제를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서서히 잠식당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한 낱 활자를 남길 수 있는게 전부인 우리는 막을 방법이 없다. 내가 흔히 쓰는 표현이 있는데,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 세계 최고의 천재들과, 세상이 무조건 바뀌도록 몸과 돈을 아낌없이 갈아넣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의 규모가 달라졌다. 우리는 매일 나가는 저가 커피 값도 부담스러워 절약할 부분을 찾기 바쁜데 넷플릭스 같은 기업은 현금 여유가 있다는 이유로 100조원 단위 인수전에 쉽게 뛰어들고 KBO리그 중계 입찰료가 600억 언저리에서 이뤄지는 와중에 태평양 건너편에서는 고작 한경기를 수조원에 사기 위에 경쟁이 치열하다. 돈으로 할 수 없는것들이 있다는 말 들어봤는가? 부자들은 그 말이 너무 싫었나보다. 그저 돈이 부족해서 안되었던 것임을 증명해나가고 있다.
세상의 급격한 변화에 늘 아직 멀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전에는 그게 어느정도 맞았다. 바뀐다고 한 세월이 언젠데 아직도 그대로인 것들 투성이아닌가. 그러나 세상의 변화는 민중이 이끌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쩐주의 입장에서 볼까. 수익이 준다. 사람들이 물가가 올라서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 한다. 쩐주 입장에서도 원자재값이 자꾸 올라서 골머리가 아프다. 줄일만큼 줄이고 신기술 개발해서 이만큼 왔다. 이제 줄일곳이 인건비밖에 없다. 조금 더디거나 리스크가 있어도 인건비를 줄이는 게 났다는 판단이 크로스가 되는 시점에, 저항없이 우리 모두 바뀐 세상위에 서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받아들이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마라탕을 시키면 문 앞에 서있는 네 발 달린 노란 로봇을 보고 친구에게 "야 미친, 언제부터 로봇이 배달했음?" 이란 질문을, 또 친구는 "저번달부터 했잖아, 뉴스 안보냐?"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장면이 훤하다. 배달기사들이 전부 어디로 갔는지, 마라탕을 시키는 나는 앞으로 배달 시켜먹을 돈은 벌 수 있을지, 돈버는 사람은 없는데 로봇이 만드는 물건은 누가 사는건지 이해 안되는 것 투성이겠지만 또 그런데로 흘러갈 것이다.